2022년 신정 떡국의 유래

2022. 1. 1. 19:48국내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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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新正)은 태양력을 기반으로 한 양력 설이라고 합니다. 양력설은 국가의 필요성에 따라 전통적인 세시풍속인 음력설을 대체하기 위하여 도입됩니다. 양력 1월 1일에 설을 쇠는 양력설이 한국에 도입된 것은 1896년, 음력으로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으로 1896년 1월 1일로 정했다고 합니다.

 

한국 국민들은 음력설을 진정한 설로 인정하고 음력 설날에 차례나 세배, 윷놀이 등의 세시풍속을 행했지만, 공무원 등의 직업을 가진 이들은 양력설만이 공휴일이어서 명절을 보내기가 편리하고 또한 솔선해서 국가정책에 따른다는 의미에서 양력설 편리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전통 새해 첫날의 대표 음식은 떡국, 떡국 한 그릇을 더 먹었다는 말이 설을 통해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다는 다른 의미이기도 합니다..

떡국은 멥쌀을 가루 내어 떡메로 친 후, 손으로 길게 만든 흰 가래떡을 썰어서 맑은 장국에 넣고 끓인 음식을 말합니다.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는 이유는 하얀색의 떡과 국물로 지난해 안 좋았던 일을 하얗게 잊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얀색 가래떡을 길게 뽑는 이유는 장수와 집안의 번창을 의미, 가래떡을 둥글게 써는 이유는 옛날 화폐인 엽전의 모양과 같도록 해 운세와 재복이 한 해 동안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라는 설도있습니다.

떡국의 유래에 대해서는 오래된 문헌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때를 가리지 못한다. 최남선 『조선상식문답』에서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상고시대의 신년 제사 때 먹던 음복 음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였다. 떡을 주식으로 먹던 때의 관습이 지속된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떡국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역사문헌으로는 『동국세시기』와 『열양세시기』가 있다. 이들 책에서 떡국은 정조차례와 세찬에 없으면 안 될 음식으로 설날 아침에 반드시 먹었으며, 손님이 오면 이것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래떡을 마련하는 과정은 그때와 현재는 다르다고합니다. 지금은 대부분 방앗간에서 기계로 가래떡을 뽑아내지만, 기계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마당에 안반을 두고 남자들이 떡메로 떡을 쳐서 가래떡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멥쌀을 쪄서 이것을 세게 치면 친떡이 됩니다. 이것을 손으로 길쭉하게 늘려서 가래떡을 만듭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워 올라오는 뜨거운 떡을 연신 찬물에 손을 담가가며 손으로 쭉쭉 늘어냅니다. 가래떡이 식어서 굳으면 칼로 어슷하게 썰어 떡국에 들어갈 떡을 만듭니다.

떡국의 국물을 만드는 주재료로는 원래 꿩고기가 으뜸이라고 하는데.... 고려 후기에 원나라의 풍속에서 배워온 매사냥이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놀이로 자리를 잡으면서 매가 물어온 꿩으로 국물을 만든 떡국이나 만둣국 그리고 꿩고기를 속으로 넣은 만두가 고급 음식으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특별하게 매사냥을 하지 않으면 꿩고기를 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일반인들은 닭고기로 떡국의 국물을 내기도 했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떡국의 국물은 꿩고기나 닭고기로 만들지 않고 소고기로 만든다. 소고기를 쉽게 구하게 된 이후에 생겨난 변화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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